민창희 비욘드바이오 대표가 대전 유성구 본사 연구실에서 신약 파이프라인을 소개하고 있다.  비욘드바이오  제공
민창희 비욘드바이오 대표가 대전 유성구 본사 연구실에서 신약 파이프라인을 소개하고 있다. 비욘드바이오 제공
“남들과 다르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글로벌 제약·바이오 시장에서 자그마한 바이오벤처의 숙명이다. 그래서 창업 초기부터 신약 후보물질 개발 프로젝트는 갈림길에 설 때마다 창의적이냐, 차별화된 접근이냐로 해법을 찾았다.”

창업한 지 꼭 6년이 된 바이오벤처 비욘드바이오 민창희 대표(58)의 지론이자 사업 전략이다. 이 회사의 파이프라인(후보물질)은 항암제, 알츠하이머 치매 치료제 등이다. 글로벌 바이오·제약시장에서 관심이 큰 분야다. 그만큼 경쟁도 치열하다. 다국적제약사들이 주도하는 이 시장에 과감히 도전장을 낸 데는 ‘비장의 카드’가 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다. 그 비장의 카드는 차별화된 접근법과 이를 뒷받침하는 기술력이다. 내년 코스닥 기술특례상장을 추진 중이다.

20년 만에 이룬 창업 꿈

"암 세포 증식 막는 신약 개발 중…내성 최소화해 항암제 새 역사 쓸 것"
경기 김포가 고향인 민 대표는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LG화학에서 15년가량 신약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간염치료제 항암제 당뇨치료제 등 다양한 의약품 연구개발(R&D)을 이끌었다. 미국 샌디에이고에 있던 LG연구소에서도 3년 동안 근무했다. 2009년 한올바이오파마 연구소장으로 자리를 옮겨 항암제 등을 개발했다.

그러다 2013년 6월 비욘드바이오를 창업했다. 세상에 없는 치료제를 내 손으로 직접 개발해보겠다는 꿈을 이루고 싶어서였다. 민 대표는 “신약 개발 영역에서 나름 역할을 해야 한다는 사명 의식을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갖고 있었다”며 “근무하던 직장에서는 꿈꾸지 못했던 연구개발 아이디어를 하나씩 실현하고 싶어 창업을 결심했다”고 했다. 그는 “창업을 위해 준비했던 사업 아이템은 10여 가지가 넘는데 이 가운데 2~3개 카드를 꺼내든 셈”이라며 “현재 개발 중인 치료제 외에 차세대 치료제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암 증식·재발 막는 치료제 개발 중”

비욘드바이오의 대표 파이프라인은 ‘BEY1107’이다. 다른 파이프라인에 비해 개발 단계가 가장 앞서 있다. 표적항암제인 BEY1107이 타깃으로 삼는 암은 췌장암, 뇌종양, 대장암, 방광암, 폐암 등 5종이다. 모두 1차 치료제로 개발 중이다. 췌장암은 지난해 5월부터 세브란스병원에서 임상 1상을 진행 중이다. 올해 임상 1상을 종료하고 내년 임상 2상, 2021년 임상 3상에 진입하는 것이 목표다. 뇌종양과 대장암 임상도 올해 2상을 시작하고 이르면 내년에 임상 3상에 진입한다는 계획이다. 방광암과 폐암은 내년에 임상 2상에 들어갈 방침이다.

BEY1107은 암 세포 증식을 멈추게 하는 방식의 치료제다. 암세포는 정상세포보다 더 빠르게 증식하는 데다 스스로 증식 환경을 조성한다. 증식뿐 아니라 전이 조건도 스스로 만들어낸다. 암 치료가 쉽지 않은 이유다. 암세포나 정상세포는 성장과 분열을 반복하면서 증식한다. 이를 위해 ‘DNA 합성준비기(G1)→DNA 합성(S)→세포분열 준비기(G2)→세포분열기(M)’의 4단계를 거친다. BEY1107은 암 세포의 성장 주기에서 G2단계에서 M단계로 진행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민 대표는 “암세포가 G2단계에서 M단계로 넘어가는 데 관여하는 단백질인 CDK1을 저해해 암세포의 증식을 억제한다”며 “증식이 멈춘 암세포는 자기사멸 과정을 거쳐 없어지게 된다”고 했다.

암 전이·재발 차단에도 효과

암의 특징 중 하나는 전이가 잘 된다는 것이다. 폐암은 뇌로 전이가 잘 일어나고 췌장암은 간으로 전이가 잘 된다. 암 줄기세포가 암세포를 퍼뜨리면서 전이가 생기게 된다. BEY1107은 암세포의 증식 억제는 물론 재발 및 전이까지 막아준다. 전이의 원인 가운데 하나인 암 줄기세포를 제거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민 대표는 “일반 항암제는 암 줄기세포를 제대로 제거하지 못한다”며 “암의 전이와 재발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BEY1107은 약물 내성까지 잡아준다. 대개 세포독성치료제는 종양 크기를 줄이는 데는 효과가 있지만 정상세포까지 죽이는 데다 약물 내성이 생기는 부작용이 있다. 암 줄기세포가 약물을 암세포 바깥으로 배출시켜 약효가 듣지 않도록 방해하기 때문이다. 췌장암 등 예후가 좋지 않은 암일수록 더욱 그렇다.

하지만 BEY1107은 암 줄기세포 제거 효과가 있어 약물 내성 문제도 줄일 수 있다. 민 대표는 “동물실험에서 효과가 확인됐다”며 “췌장암 뇌종양은 물론 대장암과 방광암에도 효과가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비욘드바이오는 췌장암 1차 치료제인 젬시타빈과의 병용투여에서도 효과를 확인했다. 그는 “젬시타빈은 처음엔 종양을 줄이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약물 내성 등을 일으킬 수 있다”며 “암 줄기세포를 잡는 BEY1107은 바이오마커 CD44가 있는 환자의 수명을 획기적으로 연장하는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이 회사는 BEY1107의 적응증을 현재 5개에서 15개로 대폭 늘려나갈 계획이다. 민 대표는 “BEY1107이 다양한 고형암에 치료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기존 파이프라인 개발이 일정 단계에 올라서면 적응증을 확대할 것”이라고 했다.

민 대표는 BEY1107이 면역항암제의 한계를 뛰어넘는 대안 치료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는 “기존 면역항암제는 효능이 떨어지거나 심장 독성 등의 부작용을 일으킨다”며 “BEY1107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1차 항암 치료제로 주목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모든 항암제의 병용 약물이 되는 게 목표”라며 “슈퍼 블록버스터급 항암 신약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자신했다.

알츠하이머 치매에도 도전장

비욘드바이오는 알츠하이머 치매 치료제 ‘BEY2153’도 개발 중이다. 치매 치료제 시장은 아직 미지의 영역이다. 시판 중인 치매 치료제는 근본적인 치료 없이 증상만 완화시켜주는 데 그친다. 게다가 일라이릴리 바이오젠 등 다국적제약사들이 잇따라 치매 치료제 개발에 실패했다. 하지만 이 회사는 차별화된 접근법으로 가능성을 열겠다는 각오다.

BEY2153은 알츠하이머를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진 단백질인 베타 아밀로이드와 뇌 신경세포에 해로운 비정상 타우 단백질을 동시에 겨냥하는 파이프라인이다. 베타 아밀로이드는 과잉생성되면 서로 뭉쳐서 신경세포를 죽이고 이를 통해 인지능력을 파괴한다. 비정상 타우 단백질은 서로 엉켜 신경세포를 죽인다. 현재 개발되고 있는 치매 치료제는 대부분 베타 아밀로이드 및 타우 가운데 하나를 겨냥한다. 민 대표는 “베타 아밀로이드와 타우는 서로 영향을 미치며 알츠하이머 치매를 유발한다”며 “두 가지 단백질을 모두 겨냥해 치매 치료의 가능성을 보이겠다”고 했다.

혈뇌장벽(BBB) 문제도 해결했다. 기존 약물의 대다수는 혈뇌장벽을 뚫지 못해 뇌에 약물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약효가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비욘드바이오는 분자량을 작게 만드는 물질을 개발해 이 문제를 풀었다. 분자량을 작게 하는 이 기술은 BEY1107 등 다른 파이프라인에도 적용됐다. 그는 “췌장 등 인체 장기도 약물 전달이 어렵다”며 “알츠하이머 치매는 물론 약물 전달이 어려운 장기 치료에 유용하다”고 했다.

“빅파마에서 큰 관심”

비욘드바이오는 유럽에서 열리는 바이오전시회 ‘바이오EU’에서 큰 관심을 끌었다. 1만7000여 개 바이오기업이 참여한 2016년에는 비욘드바이오가 검색어 1위에 올랐다. BEY1107, BEY2153 등 두 가지 파이프라인이 관심을 받으면서였다. 민 대표는 “잠을 한숨도 이룰 수 없었을 정도로 너무 흥분됐다”며 “개발 중인 파이프라인이 블록버스터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확신이 섰다”고 했다.

지난해 바이오EU 행사에서는 다국적제약사 15곳과 미팅을 했다. 올해 3월 열린 행사에서는 글로벌 톱5 제약사들이 먼저 미팅을 제안할 정도로 러브콜을 받았다. 그는 “동물실험 데이터 등을 준비해 오는 11월 행사에서 다국적제약사들과 다시 미팅을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민 대표는 다국적제약사들이 BEY1107과 BEY2153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어 조만간 기술 수출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는 “항암제와 치매 치료제 모두 슈퍼 블록버스터 가능성이 높은 파이프라인”이라며 “대한민국의 힘으로 글로벌 블록버스터를 반드시 키워내겠다”고 했다.

“내년 초 코스닥 상장 추진”

대전에 본사가 있는 비욘드바이오는 지난해 말 판교테크노밸리에 사무실을 따로 냈다. 임상 업무 관련 임직원들이 상주하는 공간으로 쓰고 있다. 항암제 임상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병원 등 임상기관들과 협의할 일이 잦아지면서다. 이 회사는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췌장암 치료제 임상 1·2상을 진행 중이고 서울대병원과 알츠하이머 치매 치료제 임상도 시작할 계획이다. 민 대표는 “국내에서 임상을 해 다국적제약사 등에 기술 수출하는 전략을 펼 것”이라며 “추후 글로벌 임상을 할 계획”이라고 했다.

비욘드바이오는 지금까지 230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국책과제 수주액만 92억원 규모다. 국책과제 수행으로 기술력을 축적해온 셈이다. 민 대표는 “내년 초 코스닥시장에 상장할 계획”이라며 “오는 9월 초 기술특례 상장을 위한 기술평가심사를 신청할 예정”이라고 했다.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